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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리뷰 – 지옥 끝에서 피어난 부성애의 불꽃

by qwer101793 2025.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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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관련 사진

2020년 개봉한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복수극의 외피를 쓴 감성 누아르 액션으로, 고요한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부성애와 인간의 고통을 강렬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황정민과 이정재, 두 배우의 숨막히는 대결과 함께, 감독 홍원찬은 잔혹하고도 슬픈 이야기로 관객을 몰입시킨다.

숨겨진 진실, 한 아이를 위한 지옥행

8년 전, 국정원 비밀부서 요원이었던 인남(황정민)은 대인 살상 임무까지 수행하는 그림자 같은 존재였다. 조직 해체 후 일본으로 망명한 그는 살인청부업자로 살아가지만, 더는 이 삶을 지속할 수 없다는 회의감 속에서 은퇴를 결심한다. 하지만 마지막 타겟의 동생이자, 잔혹한 킬러 레이(이정재)가 그의 존재를 알아차리면서 지옥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동시에, 과거 인남의 연인이었던 영주(최희서)가 태국에서 딸 유민과 함께 살아가다 괴한의 습격을 받아 살해당한다. 영주의 유류품 속 사진을 통해 딸의 존재를 알게 된 인남은 태국으로 향하고, 자신이 몰랐던 부성애를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한다. 그 여정은 아이를 위한 구원임과 동시에, 인남 자신의 죄책감에 대한 속죄이기도 하다.

이정재의 레이 – 잔혹한 악의 화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또 다른 주인공 레이의 캐릭터가 영화의 분위기를 압도한다. 이정재는 잔혹하고 무자비한 킬러 레이를 연기하며, 감정 없는 눈빛과 폭발적인 분노로 말 그대로 '악'을 구현해낸다. 레이에게 있어 인남은 복수의 대상이며, 그 복수는 이유조차 사라진 지 오래지만 멈출 수 없는 집착으로 남는다.

이정재의 레이는 단순한 악역이 아닌, 왜곡된 감정의 산물이다. 잔혹한 행동과 대비되는 무표정한 얼굴은 레이가 인간인지 괴물인지조차 헷갈리게 만든다. 레이는 끝내 인남과의 대결에서 공멸의 길을 택하게 되지만, 그 광기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서늘한 여운을 남긴다.

처절하고 묵직한 액션 – 잔혹하지만 미학적

영화의 또 다른 핵심은 강도 높은 액션이다. 도시의 음습한 뒷골목, 폐공장, 호텔, 병원까지. 다양한 공간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인남과 레이의 추격전은 그 자체로 숨막히는 긴장감을 자아낸다. 화려한 스타일 대신, 피와 땀, 숨소리와 고통이 느껴지는 생생한 액션은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박힌다.

특히 후반부, 수류탄과 칼, 맨몸까지 동원되는 주차장 전투와 최후의 결투 장면은 단순한 타격을 넘어 감정의 폭발 그 자체다. 피를 흘리면서도 끝내 아이를 지키기 위한 인남의 처절한 싸움은, 액션의 폭력성을 넘어선 숭고함으로 다가온다.

태국 배경 – 낯선 세계, 낯익은 고통

이 영화는 주요 배경을 태국 방콕으로 설정해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화려한 도시의 외면과 달리, 장기밀매와 인신매매, 부패한 경찰과 무기밀매 등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특히 아이들이 감금된 폐공장과 수술실, 밀항 루트를 은유한 터미널 등은 세상 끝에 내몰린 사람들의 삶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닌, 인남의 심리적 지옥과도 같다. 죄의식, 분노, 슬픔이 뒤섞인 방콕의 어두운 골목길은 그 자체로 인남의 내면이다.

잔혹함 속에서 피어난 따뜻한 연대

극 중 인남이 만나는 유이(박정민)는 외면과 내면 모두 상처 입은 인물이다. 성전환 수술 중단 상태로 살아가며, 사회의 편견과 무관심 속에서 방황하는 유이는 인남과 함께 딸 유민을 찾는 여정에 동참한다. 처음엔 돈을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점점 진심이 담기기 시작하고 결국 유민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순간까지 그 곁을 지킨다.

이 작은 연대는 영화 속 숨통을 틔워주는 중요한 요소다. 유이의 존재는 인간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 속에서, 가장 큰 용기를 가진 자는 곁에 머무르는 자라는 걸 보여준다.

인남의 최후 – 완성된 사랑, 완성된 속죄

마침내 유민을 구해낸 인남은 자신이 아버지라는 사실은 끝내 직접 말하지 않는다. 그저 곁에 머무르며, 마술을 보여주고, 미소를 보여주며 아이와 교감을 쌓아간다. 그리고 마지막 위협, 레이로부터 유민을 지키기 위해 수류탄으로 함께 산화한다. 그것은 자기 구원이며, 동시에 아이를 위한 마지막 선택이었다.

유민과 유이는 인남이 준비한 가방을 찾아 파나마로 향하고, 유민은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인남은 끝내 아이 곁에 남지 못했지만, 자신의 생을 걸고 한 아이를 구한 이 남자의 삶은 그렇게 막을 내린다.

총평 – 사랑과 지옥 사이, 피로 쓴 헌사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냉혹한 복수극의 외피 안에 뜨거운 부성애를 품은 작품이다. 스타일리시한 누아르 액션과 감정의 깊이를 모두 담아내며, 단순히 화려한 액션 그 이상을 보여준다. 잔혹한 현실과 그 안에서 발화하는 인간성의 빛, 그리고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단 하나의 존재. 영화는 제목 그대로, 다만 이 한 아이만은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간절한 기도를 스크린 위에 수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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