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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 - 비열함이 권력이 되는 시대의 자화상

by qwer101793 2025.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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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 관련사진

"살아 있네."

이 한마디에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가 말하고자 하는 시대의 냄새, 권력의 작동 방식, 인간의 본능이 모두 담겨 있다.
윤종빈 감독의 이 작품은 1980~90년대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범죄와 권력, 그리고 생존을 둘러싼 ‘진짜 나쁜 놈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러나 잔혹하게 풀어낸다.

조폭 영화의 탈을 쓴 한국 사회의 기록

<범죄와의 전쟁>은 명목상 조폭 영화다.
그러나 이 영화는 주먹보다 무서운 ‘입’과 ‘인맥’이 지배하던 시대를 다룬다.
부산을 배경으로, 한때 세관 공무원이었던 최익현(최민식)이 마약 밀수 사건을 계기로
조직폭력배 최형배(하정우)와 손잡고 세력을 키워나가는 이야기다.

하지만 단순한 범죄 스릴러가 아니다.
영화는 ‘조폭’과 ‘공무원’, ‘검사’와 ‘정치인’이 어떻게 얽히고 이용되는지를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 중심엔 두 명의 괴물 같은 인물, 최익현과 최형배가 있다.

최익현 – 사회 구조가 키운 비열한 생존자

최익현은 처음부터 악당은 아니었다.
그는 무능하고, 찌질하며, 말 많은 세관 공무원이었다.
그러나 우연히 마약을 손에 넣고, 그걸 팔아먹을 궁리를 하면서 그의 인생이 바뀐다.

그는 필로폰을 팔기 위해 조직폭력배와 손을 잡고,
자신보다 나이 어린 최형배를 ‘내가 선배다’며 호령한다.
그 순간부터,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권력을 쌓아간다.
입심, 인맥, 아부, 그리고 유연한 줄타기.

그는 자기 행위를 “일본 원숭이들 약 먹고 뽕쟁이 됐으면 좋겠다고”
애국심으로 포장하면서 자기합리화한다.
하지만 뒤로는 그 일본 야쿠자와 거래를 서슴지 않는다.
그의 이중성과 기회주의는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는 당시 한국 사회의 비열함이 낳은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의 인맥 장부는 10억짜리 수첩이고,
촌수로는 14촌쯤 되는 인물도 “우리 집안”이라며 줄을 댄다.
그 결과, 경찰서조차 자기 편으로 만들어버리는 괴물 같은 로비스트로 성장한다.

최형배 – 침묵의 야수, 비정한 왕의 몰락

반면 최형배는 무력과 공포로 군림하는 전통 조폭 스타일이다.
그는 말이 없고, 표정도 거의 없다.
하지만 그 침묵이 더 무섭다.
그의 존재는 질서의 파괴자이자,
말보다 행동으로 위협하는 야수다.

처음엔 최익현을 “대부님”이라 부르며 윗사람 대우를 해주지만,
조직 내 위계가 흔들릴 위협을 느끼자 곧바로 토사구팽한다.
“좆도 아닌 것처럼 보이게 했다”는 이유 하나로
익현을 피투성이로 만들고, 사업 지분까지 강제로 뺏는다.

이 장면은 단순한 조폭의 반란이 아니다.
그건 폭력 권력의 불안정한 생존 본능,
그리고 배신을 용납하지 않는 절대 권력자의 공포감을 보여준다.

하지만 결국 형배는 법의 칼날에 무너진다.
검사 조범석과 거래한 최익현의 제보로 체포되는 순간,
그가 익현을 바라보는 살기 어린 눈빛은 영화의 마지막 백미다.
그 눈빛은 말한다.
“이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진짜 나쁜 놈은 누구인가 – 구조적 악에 대한 질문

<범죄와의 전쟁>은 단순히 한 조폭과 브로커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이 영화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다.
“진짜 나쁜 놈들은 누구인가?”

영화 속에서 최형배나 김판호 같은 조폭들은
주먹질밖에 모르는 구시대의 잔재다.
실제로 큰 사회적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위치는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최익현 같은 인물이다.
그는 사회 구조 속에서 위법과 합법 사이를 교묘히 넘나들며
정재계 인사들과 유착하고,
법 위에서 줄을 서며 살아남는 기생형 권력자다.

그리고 더 나쁜 건,
그런 인물을 방치하거나, 이용하거나, 묵인한 법조계다.
결국 최익현은 구속되지도 않고,
아들은 검사로 잘나가며, 자신은 최후의 생존자가 된다.
이보다 더 씁쓸한 승리의 아이러니가 있을까.

아버지의 초상 – 가족이라는 이름의 자기합리화

흥미로운 건, 영화가 최익현을 단순한 악인으로만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아들을 위해 영재교육을 시키고,
자식을 검사로 만들어 신분 상승의 꿈을 이룬다.

이 때문에 이 영화는 한국형 아버지의 초상으로도 읽힌다.
불륜을 저지르고, 성희롱을 일삼지만,
동시에 가족을 위해 희생한다는 자기합리화를 한다.
그는 결국 ‘가정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모든 죄를 정당화한다.

그가 아들에게 남긴 ‘빈 총’은 허세의 상징이지만,
그 아들이 결국 연수원 차석까지 오르는 걸 보면
이 비열한 아버지의 잔재가 어떻게 제도 속으로 녹아드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총평

<범죄와의 전쟁>은 시대극이다.
그리고 동시에 부패한 시스템과 인간의 야비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주먹을 휘두르는 조폭보다,
권력을 등에 업은 브로커가 더 무서운 시대.
그 시대에선 살아남는 자가 정의를 결정한다.

최익현은 살아남았고,
최형배는 사라졌으며,
관객은 묻게 된다.
“과연 지금은 누구의 전성시대인가?”

영화는 끝났지만, 그 질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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