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멈췄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지구가 멈추지 않기 위해 시도한 노력’이 지구를 멈추게 만들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는 그런 역설 위에 탄생한 강렬한 디스토피아다. 79개국이 지구 온난화 해결을 위해 살포한 냉각제 ‘CW-7’의 과잉 반응으로 지구는 순식간에 얼어붙고, 유일한 생존 수단은 초거대 열차 ‘설국열차’뿐이다.
하지만 이 열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다.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이며, 하나의 계급 사회다. 정지된 세상에서 움직이는 유일한 세계, 그 안에서 벌어지는 혁명은 단순한 반란이 아니라 ‘인류의 미래를 향한 투쟁’이자 ‘시스템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다.
꼬리칸, 인간 존엄성의 최후 보루
영화의 발단은 매우 간결하지만 충격적이다. 지구가 얼고, 인류는 설국열차라는 ‘철의 구명보트’에 몸을 싣는다. 그리고 17년 후, 열차 안은 엄격한 계급 구조로 재편된다. 꼬리칸의 사람들은 짐짝처럼 쌓여 살아간다. 그들은 단백질 블록이라는 유일한 식량으로 연명하고, 군인들의 폭력 속에 존재 자체를 부정당한다.
바로 여기서 영화는 “생존과 존엄 사이의 거리”를 묻는다. 꼬리칸은 마치 현대 사회의 빈곤층을 형상화한 듯하다. 생존은 허용되지만, 권리와 목소리는 없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우리는 커티스(크리스 에반스)를 만난다. 그는 꼬리칸의 영웅이 아니라, ‘죄책감으로 몸을 지탱하는 리더’다. 그가 준비하는 반란은 단순한 폭동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다움’을 되찾기 위한 마지막 시도다.
혁명의 서막, 그리고 인간성의 균열
영화는 꼬리칸의 반란을 단순히 영웅적 사건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매 장면마다 “이 선택이 과연 옳은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커티스는 총알이 없다는 것을 ‘도박’처럼 베팅하고, 목숨을 걸고 병사의 총구에 자신의 머리를 가져다 댄다. 공허한 “철컥” 소리와 함께 터지는 반란은 비장하고 처절하다.
하지만 그 시작점부터 이미 균열이 보인다. 군인들이 바이올리니스트 한 명만을 데려가는 장면, 어린아이들의 키를 재고 강제로 끌고 가는 비인간적인 장면들에서 우리는 열차가 ‘질서’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비인도적 시스템을 정당화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설국열차는 사회의 축소판이고, 꼬리칸은 이 축소된 세계에서조차 버림받은 이들의 최후의 보루다.
그리고 영화는 이야기 속 혁명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날카롭게 찌른다. 반란은 단결로 시작하지만, 그 끝은 늘 개인의 결단으로 귀결된다. 커티스는 자신이 ‘가장 무서운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임을 점점 드러낸다. 그는 과거에 벌어진 끔찍한 식인과 절망 속에서 살아남았고, 그래서 지금 이 혁명을 누구보다 절실히 원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알고 있다. 이 혁명의 끝이 단순한 승리로는 정리되지 않는다는 것을.
폭력과 통제의 악순환: 중간칸의 전투
열차는 앞으로 나아가지만, 그 여정은 점점 잔혹해진다. 식량 공장에서 바퀴벌레로 만든 단백질 블록을 본 커티스의 절망은 단순한 ‘혐오’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지켜온 신념과, 그 신념이 향하는 방향에 대한 깊은 회의다. 꼬리칸 사람들은 생존하기 위해 벌레를 먹었다. 하지만 그걸 만들던 이는 “나도 먹는다”며 웃는다. 누구도 죄인이지만, 누구도 선택받지 못한 이 구조 속에서 모두는 피해자이자 가해자다.
그리고 열차는 암흑 속으로 들어간다. 이 장면은 영화 전체에서 가장 인상적인 전투이자, 감독 봉준호 특유의 ‘리듬감 있는 파괴’의 진수를 보여준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야간투시경을 쓴 진압군이 꼬리칸 사람들을 학살하는 장면. 그리고 성냥 하나에서 시작된 횃불이 전체 전투의 판도를 바꾸는 그 순간. 이건 단순한 전투 장면이 아니다. 어둠 속에서 빛을 들고 달리는 사람들의 모습은 "절망 속의 희망", 그리고 **"집단의 연대"**를 상징한다.
설국열차가 말하고자 한 것들
설국열차는 “계급”과 “통제”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모든 시스템은 유지되기 위해 질서를 요구한다. 하지만 그 질서는 반드시 누군가의 희생 위에 놓이기 마련이다. 영화는 이 구조를 냉정하게 그려낸다. 메이슨(틸다 스윈튼)의 “너는 신발이야. 너는 머리에 있으면 안 돼. 신발은 발에 있어야 해.”라는 말은 단순한 계급 차별이 아니다. 그것은 철저히 구조화된 세계에서, 자신이 어디에 속해야 하는지를 ‘세뇌’시키는 발언이다.
봉준호 감독은 이 구조를 한 칸, 한 칸 넘겨가며 점점 분해해간다. 꼬리칸에서 중간칸으로, 중간칸에서 상류칸으로. 마치 한 인간이 각성해가는 내면의 여정을 그리는 것처럼, 열차 안의 여정도 그렇게 진행된다.
정리하며: 설국열차는 멈춰야만 한다
<설국열차>는 단순한 디스토피아 액션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메타포의 집합이다. 인간이 만든 시스템은 과연 언제까지 지속 가능할까? 희생 없이는 존속할 수 없는 질서라면, 그 질서는 과연 정의로운가? 그리고 그 질서에 도전하는 인간은, 그 안에서 또 다른 질서를 꿈꿀 수 있을까?
커티스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관객은 그의 여정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 구조와 권력, 계급, 그리고 인간성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기차는 돌고 돈다. 하지만 그것을 끝내기 위해선 누군가 멈춰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