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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탈주 – 도망치는 자와 쫓는 자, 서로의 거울이 되다

by qwer101793 2025.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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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었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영화 『탈주』는 단순한 스릴러도 아니고, 흔한 탈북 드라마도 아니다.
이 작품은, 운명을 거부한 남자와 운명을 수긍한 남자의 처절하고도 복잡한 인간 서사다.
그리고 그 정중앙에는 ‘탈출’이라는 단어가 놓여 있다.
탈출은 육체의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정신의 것이다.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고, 누군가는 살아남기 위해 자기 자신을 포기한다.

임규남 – 실패를 향한 가장 위대한 질주

임규남(이제훈)은 북한군 중사다.
1988년 3월 28일 함경북도 온성군 강안리 출생.
어머니는 사망했고, 아버지는 생전에 리현상의 집안에서 운전기사로 일했다.
그가 복무한 부대는 제1사단 민경대대.
제대를 앞두고 있지만, 고향에 돌아가도 반겨줄 사람 하나 없는 삶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는 자유를 갈망한다.
하지만 그 자유는 단지 '남한'이라는 상징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삶”을 살고 싶다는 인간의 본능적인 외침이다.
어린 시절부터 로알 아문센의 전기를 품고 다니며, 나침반과 단파라디오, 지뢰 매설 지도까지 준비해온 그는
‘탐험가처럼 떠나는 삶’을 준비해왔다.

지뢰밭을 가로지르는 그의 탈주는 미친 도전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것은 **살고 싶다는 ‘용기’**였다.
죽더라도 멈추지 않는 이 남자의 질주는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은 당신의 삶을 선택한 적이 있는가?”

리현상 – 정적이자 형, 동지이자 적

리현상(구교환)은 이 작품의 진짜 '심장'이다.
국가보위성 소속 소좌, 규남과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온 관계.
한때는 피아니스트를 꿈꾸며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에서 연주하던 천재였으나,
현실의 벽 앞에서 순응을 선택한 남자다.

현상은 규남이 탈주하려 하자 그를 오히려 ‘영웅’으로 만들어
상부에 보고하고, 본부로 승진까지 시켜준다.
정치적인 판단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형처럼 아끼는 후배를 보호하려는 진심이 있었다.

하지만 규남은 다시 도망치고,
현상은 그를 쫓기 시작한다.
쫓는 이유는 명분, 체제, 임무…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자신이 이미 포기해버린 삶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는 규남을 보며 느끼는 분노와 부러움."

현상은 누가 봐도 냉철한 추격자지만,
그의 안에는 복잡한 감정이 교차한다.
사랑했던 남자 선우민에 대한 미련, 피아노에 대한 미련, 자유에 대한 미련…
그는 규남을 쏘지 않는다.
끝내 규남을 향해 울며 말한다.
“그래, 가서 실패해봐. 마음껏.”

두 인물의 대비, 그리고 운명이라는 말

임규남은 운명에 저항한 자,
리현상은 운명을 받아들인 자다.
이 둘은 마치 거울처럼 서로를 비춘다.

규남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스스로의 길을 선택하며 달린다.
반면 현상은 최고의 권력 위치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과거, 사랑, 재능… 모든 걸 포기한 채 살아간다.

그럼에도 둘은 서로를 미워하지 않는다.
영화는 묻는다.
“과연, 누가 더 불행한가?”

인상적인 장면들

  • 지뢰밭을 가르는 규남
    → 아무도 갈 수 없는 길을 가는 한 인간의 ‘처절한 선택’
  • 현상의 총구가 떨리는 순간
    → 규남을 바라보며 조준하지만, 차마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는 형 같은 마음
  • 연회장에서 ‘내가 사랑했던 개자식’이라 저장된 선우민의 전화를 받는 장면
    → 부정한 사랑, 부정한 감정, 그 안에 남은 진짜 자아

아쉬운 점

  • 임규남이 맞고, 터지고, 쓰러지면서도 끈질기게 살아남는 설정은 과장처럼 느껴질 수 있다.
    → 그러나 이건 ‘영웅 만들기’가 아니라 “실패를 각오한 도전의 메타포”로 이해할 수 있다.
  • 리현상의 연출적 디테일 중 일부(예: 초음파 사진, ‘수신제가치국평천하’ 발언)는
    현실 북한에서는 어불성설이지만, 캐릭터의 이중성과 비극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총평

『탈주』는 단지 탈북 영화가 아니다.
이건 삶과 죽음, 저항과 순응, 인간과 체제 사이의 뜨거운 충돌이다.

이제훈은 '삶을 위해 끝까지 버틴 자'를,
구교환은 '삶을 지키기 위해 모든 걸 내려놓은 자'를 연기했다.
그리고 이 둘의 대조는 너무도 극적이면서, 현실적이다.

『탈주』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당신의 길을 스스로 선택한 적이 있습니까?"
그 질문 앞에, 우리는 규남처럼 달릴 용기를 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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