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최동훈
개봉: 2015년
장르: 드라마, 액션, 역사
주연: 전지현(안옥윤), 이정재(염석진), 하정우(하와이 피스톨), 조진웅(속사포), 최덕문(황덕삼) 등
시대를 관통하는 탄환, 영화 <암살>의 탄생
영화 <암살>은 2015년 여름 개봉하자마자 한국 영화계에 깊은 울림을 남긴 작품이다. 일제강점기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배경을 바탕으로, 감정에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시종일관 긴장감 넘치는 전개를 펼쳐낸다. 감독 최동훈은 <도둑들>로 대중성과 스타일을 증명한 데 이어, 이번에는 역사와 인간의 본성을 탐색하는 훨씬 더 깊은 주제를 꺼내 들었다.
<암살>은 허구의 인물들을 통해 조국의 독립이라는 이상과, 그 아래 감춰진 인간들의 선택과 배신, 그리고 용서를 다룬다.
이 영화의 탁월한 점은 단순히 '일제에 맞서는 독립군'이라는 공식에서 머무르지 않고, 그 시대를 살아간 이들의 다양한 삶과 갈등을 균형감 있게 포착해냈다는 것이다.
조국을 향한 총, 안옥윤이라는 인물
이 영화의 주인공 안옥윤은 단순한 여전사가 아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 헤어진 쌍둥이 언니와도 같은 이중적 정체성을 지닌 인물이며, 임시정부의 저격수로서 복잡한 내면을 품고 있다. 전지현은 이 역할을 통해 자신이 단순한 스타가 아닌, 진정한 배우임을 증명했다.
옥윤은 작전의 수행자로 등장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그녀는 단순한 임무 수행을 넘어 개인과 조국, 감정과 책임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며 성장한다.
그녀가 겨눈 총구는 단순한 타깃을 향해 있지 않다. 그것은 오히려 그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품고 있었던 정의감과 아픔의 상징이다.
그녀가 끝내 쏘아올린 총성은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할 뿐 아니라, 관객의 심장 깊숙한 곳까지 파고든다.
그 총성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잊히지 말아야 할 기억의 울림이자, 피할 수 없는 질문의 형태다.
염석진 – 생존과 배신 사이의 인물
이정재가 연기한 염석진은 <암살>의 가장 복잡하고 입체적인 캐릭터다. 그는 처음엔 임시정부 요원으로 등장하지만, 곧 일본과 내통하는 밀정임이 드러난다.
그의 배신은 단순히 개인의 욕심이 아닌, 당시 많은 이들이 겪어야 했던 존재의 위기를 대변한다.
염석진은 조국도, 동지애도, 신념도 모두 저버리며 살아남는다.
“해방될 줄 몰랐으니까...” 이 짧은 문장 하나에,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 백성의 혼란과 허무함, 생존을 위한 치열한 계산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의 배신은 단순히 악행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도 마주하고 있는, 역사가 용서하지 못한 이름 없는 이들의 자화상이다.
영화는 그를 처단하지 않는다. 오히려 해방 이후의 조국에서 그는 영웅으로 살게 된다. 이것이 더 끔찍한 진실이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우리는 묻는다.
진정한 적은 누구인가?
'하와이 피스톨', 속사포, 황덕삼 – 이름 없는 영웅들
안옥윤과 함께 작전에 투입된 암살조는 개성 넘치는 인물들로 구성된다.
하와이 피스톨(하정우): 유쾌하고 냉정한 암살자. 돈을 받고 임무를 수행하지만, 끝내 인간적인 정서를 통해 진정한 결단을 내린다.
속사포(조진웅): 말보다 행동이 빠른 인물. 과묵하지만 동료애에 충실하며, 독립이라는 이상에 가장 순수한 인물이다.
황덕삼(최덕문): 불만도 많고 투덜거리지만 누구보다도 묵직한 책임감을 지닌 인물.
이들 세 인물은 단순한 조연이 아니라, 민중의 얼굴을 대변하는 실체 없는 영웅들이다.
특히 하와이 피스톨과 안옥윤 사이의 감정선은 로맨스를 표방하지 않으면서도, 깊은 공감과 의리를 전해준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시대 앞에 총을 들고 섰고, 그 선택의 무게는 결국 목숨이라는 대가로 돌아온다.
연출과 서사 – 장르를 넘나드는 서사 구조
<암살>은 단지 항일 영화가 아니다.
첩보 스릴러, 시대극, 액션 누아르, 감성 드라마 등 장르적 다양성을 과감히 흡수한다.
감독 최동훈은 복잡한 플롯 속에서도 인물의 감정을 절대 잃지 않는다.
긴장감 넘치는 총격씬
속도감 있는 도심 추격전
감정의 결이 살아있는 대면 장면들
그 모든 것들이 한 편의 큰 그림처럼 조화를 이룬다. 무엇보다 인물 중심의 서사가 강렬해, 관객은 누구 한 명도 쉽게 잊을 수 없다.
음악과 미장센 또한 시대극의 미학을 잘 살려내며, 1930년대 경성과 상하이의 풍경을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
분석 – <암살>이 던지는 질문들
<암살>은 단지 과거를 재현한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신념과 생존 중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진실을 감추는 자와 그것을 기억하려는 자 중,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지만, 우리는 패자의 목소리를 얼마나 기억하는가?
이 영화는 ‘암살’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실은 기억과 망각, 배신과 용서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렇기에 1933년이라는 시공간을 넘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날카로운 반향을 일으킨다.
총평
<암살>은 단순한 액션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기억을 지키기 위한 전투이며, 그 시대를 살아간 이들의 마지막 외침이다.
총성은 멈췄지만, 그 기억은 여전히 우리 안에서 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