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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완벽한 타인> 리뷰 – 스마트폰, 그 안의 지옥문을 열다

by qwer101793 2025.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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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완벽한 타인 관련사진

 

“우리, 오늘 한 번 핸드폰 까볼까?”

이 단순한 한마디가 불러온 파국. 영화 <완벽한 타인>(2018, 감독 이재규)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일상 속 사물, '스마트폰'을 통해 현대인의 이중성과 관계의 본질을 파고드는 작품이다. 서스펜스도, 블랙코미디도, 심리극도 모두 품은 이 영화는 한 공간 안, 일곱 명의 친구와 가족이 모인 저녁 식사 자리에서 벌어지는 파장을 날카롭고도 현실감 있게 그려낸다.

한밤의 식탁 게임 – 평범함 속에 감춰진 폭탄

오랜 친구들이 모인 부부 동반 저녁 식사. 와인과 웃음이 오가던 그곳에 한 명이 던진 제안, "우리 핸드폰을 공개해보자"는 게임으로 분위기는 삽시간에 뒤집힌다. 문자, 전화, 이메일, 알람, 심지어 숨겨놓은 앱까지. 휴대폰 속 모든 것이 실시간으로 식탁 위에 드러나면서, 등장인물들의 민낯이 하나둘씩 밝혀진다.

각자의 민낯 – 일곱 인물의 이면

석호(조진웅) & 예진(김지수)

석호는 아내 몰래 정신과 상담을 받으며 부부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지만, 동시에 전 재산을 담보로 부동산 투자에 실패해 심각한 위기를 숨기고 있다. 예진은 표면적으로는 완벽한 아내지만 사실은 친구의 남편인 준모와 불륜 중이며, 딸에게는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겉으로는 안정된 중산층 가정의 모습을 띠지만, 내면은 불신과 고통으로 가득하다. 영화 후반, 이 부부의 비밀이 드러났을 때 관객은 그들의 관계가 곧 붕괴될 것임을 직감하게 된다.

태수(유해진) & 수현(염정아)

태수는 권위적인 가장처럼 보이지만, 실은 아내의 음주운전을 대신 뒤집어썼을 정도로 정 많은 남편이다. 연상녀와의 은밀한 텔레그램 사진 교환이 오해를 불러일으켰고, 친구 영배의 비밀로 인해 "게이 불륜남"이라는 누명까지 쓰게 된다.

수현 역시 남편의 변화된 태도와 소외감 속에서 불안정한 심리를 드러내며, 소설 속 이야기를 통해 과거 남편과의 추억을 되새긴다. 게임이 끝난 후 현실로 돌아온 이 부부는 서로를 다시 바라보려는 노력을 보이지만, 여전히 갈등의 불씨는 남아 있다.

준모(이서진) & 세경(송하윤)

준모는 학력 콤플렉스와 분노조절 문제를 지닌 인물로, 복수의 여성과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다. 아내 세경은 순수하고 헌신적인 연인이었지만, 남편의 실체를 알게 되며 결국 결혼 반지를 빼고 식탁을 떠나는 인물로 변화한다.

세경은 영화 속에서 가장 큰 피해자이자, 가장 인간적인 인물이다. 자신의 꿈도, 자존감도, 사랑도 모두 내어주었지만 돌아온 것은 거짓뿐이었다. 그녀의 마지막 퇴장은 이 영화의 정서적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영배(윤경호)

영배는 친구들에게 커밍아웃하지 못한 게이 인물로, 동성애에 대한 친구들의 편견이 두려워 애인을 숨기고 살아간다. 게임 속에서는 커밍아웃을 통해 진심 어린 고백을 하지만, 현실에서는 끝내 숨기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는 영화의 정서적 중심이자, '완벽한 타인'이라는 주제를 가장 정직하게 구현하는 인물이다. 세상이 만든 두려움, 친구라는 이름 아래 가려진 위선이 그를 평생 침묵 속에 가두고 있었다.

대사와 연기, 그리고 연출의 힘

영화는 하나의 공간 안에서 거의 전적으로 '대사'로 진행된다. 이재규 감독은 원작의 구성을 그대로 가져오되, 한국 사회 특유의 정서와 인물 간 감정선을 세심하게 조율하며 현지화에 성공했다.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다. 특히 유해진의 인간적인 캐릭터와 조진웅의 복합적인 심리는 몰입도를 높인다.

사실상 이 영화는 '사람'이 주인공인 작품이다. 무대극처럼 좁은 공간에서 오로지 캐릭터 간의 대화와 충돌, 고백만으로 밀도 높은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반전 엔딩과 메타포 – '게임을 안 한 현실'의 아이러니

결국 영화의 마지막은 현실이 아닌 '게임을 하지 않았다면'의 시점으로 돌아간다. 각자의 비밀은 그대로 묻힌 채, 부부와 친구 관계는 겉보기엔 아무 일 없던 듯 이어진다. 하지만 관객은 이미 그 이면을 알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현실의 침묵이 더 찝찝하고 무겁게 다가온다.

세경의 마지막 대사, "이 사람들 앞에 민수씨를 데려오지 않길 잘하셨어요"와 반지가 끝없이 돌던 그 식탁 위의 장면은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압축한다. 우리는 누구에게도 완전히 드러낼 수 없는 비밀을 품고 살아가며, 그걸 들킨 순간 관계의 균형은 무너진다.

이 결말은 하나의 뼈 있는 농담처럼 다가온다. 겉보기엔 멀쩡한 이 관계들이 실은 얼마나 위태롭게 균형을 잡고 있었는지를 알게 된 순간, 평화로웠던 현실이 오히려 가장 불안정해 보이기 때문이다.

총평 – 우리는 서로에게 '완벽한 타인'이다

<완벽한 타인>은 단순한 블랙코미디가 아닌, 인간관계의 복잡성과 현대인의 불안, 그리고 '솔직함'이라는 개념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누구든 그 테이블에 앉게 되면, 게임이 시작된 순간부터 '완벽한 타인'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말한다. 진실은 해방이 될 수도, 파괴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진실은 끝까지 드러나지 않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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